얼마나 가치있게 사느냐를 고민하지 않았다.
서른을 넘은 나이에 사춘기 시절의 방황을 수개월째 다시 하고 있는 나는 오늘 내가 지금 얼마나 허접하게 살고 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모든것이 그러하듯 어떤 깨달음은 정말 알수없는 곳에서 일어난다.
현재의 사랑으로 지난 사랑의 아름다움을, 식당에서 먹은 어느 맛없는 김치에서 어머니의 손맛에 대한 귀중함을 깨닫는 것처럼 당연한 인과적 현상에 대한 깨달음도 있지만 우리의 소름을 돋을만한 인생 순간순간의 깨달음은 의외의 곳에서 발견되곤 한다.
벅찬 돈으로 애태우던 욕정을 사는 순간 어머니의 사랑을 깨달을 수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짧은 대화소리에 한국경제의 미래에 대한 어떠한 확신을 가질수도,
즐거운 술자리에서의 누군가의 농담에 모든 이들이 내가 더 유쾌하다는 듯 질러대는 큰 웃음소리속에서 인생의 슬픔을 느낄수도 있고,
오늘처럼 지난 여자친구의 미니홈피에서 내가 지금 얼마나 허접하게 살고 있는지를 깨달을수도 있었다.
내가 가진 고민들과 내가 가진 후회들과 내가 안고있는 짐들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내가 잘난 줄 알고 살고 있던 나는 이세상속의 내가 아닌 내세상속의 나인것이다.
남들 다하는 치열한 경쟁따위속에서 살기 싫다는 나의 잘난척은 경쟁에서 낙오될까 두려웠던 나의 비겁함이며, 나는 관심없다며 무관심속에 흘려보낸 내 주위의 사람과 꿈들은 내가 버려질까 아예 꿈도 꾸지 않는 졸렬함이며, 지금 너가 내 위의 위치에 있더라도 나중엔 내가 더 잘될꺼니 마음껏 나를 비웃어 두어라 했던 나의 자신감은 사실 나를 위로한 것이다.
부디 비겁해 지지 말고 당당해 지길, 위로받으려 하지말길, 아무도 나를 모른니 누가 제발 나를 이해해달라는 바람을 갖지 않길 바라본다.
나에게 깨달음을 준 그친구에게 연락이 하고 싶어졌다.
나와 제발 둘도 없는 친구로 남아줄 수 있겠냐고..
5초도 지나지 않아 불가능한 현실임을 깨닫고 마음을 접는다.
미안하다 말하고 싶다.
하지만 이것도 나에겐 나의 순수한 진심을 담은 미안하다 의미 이상의 말이며, 내가 평생 살면서 이토록 진심을 담아 뱉어내는 말이 몇번 없을 정도의 결정체를 토해내는 말이지만, 나를 잊고 사는 그사람에겐 지나간 남자의 허망한 푸념뿐이 안된다는 사실이 떠오르고 또다시 마음을 접는다.
그래, 어차피 어른의 인생은 외로운거야.
그리고 이 외로움을 이기려면 황석영님의 글처럼 사람은 누구나 다 오늘을 사는거라고 미친듯이 살아야 해.
지금 이순간 이현재에 미쳐서 살지 못하면 외로움에 미쳐서 죽을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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